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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읍성 객사와 남문 표징을 달다

제가 성곽이 복원이 되지 않는다면 최소한 이런 식의 표징을 만들어야 되는 것이 아니냐? 하는 식의 글을 블로그에 적은 것이 2008년과 2012년 5월입니다. 2008년은 도로에 페인트로 표시하자는 것이고 2012년은 표징을 설치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창원시 도시재생 관계자를 만날 때 마다 최소한 이것이라도 해달라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최소한 표징이라도...

창원읍성 여제단 지번 확인

창원 여제단을 찾았다고 한 것이 지난 2017년 9월 20일 경이었습니다. 그때에는 1954년 항공지도를 통해서 찾았습니다. 현재는 남해고속도로가 지나가는 곳입니다. 항공지도를 통해서 찾았지만 지번에 관해서 조금은 의문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1914년에 조사한 지적도에서 창원시 소답동 871번지에 있는 지목이 垈地의 垈임을...

창원읍성 남문 옹성 발견

지난 2019년 3월 14일 창원읍성 남문지를 지나가다가 본 것이 민가를 철거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어 이곳은 남문지가 있던 곳인데 싶어서 가보니 아니라 다를까? 남문의 옹성이 나왔습니다. 그동안 문틈 사이로 보이던 남문의 옹성이 형태를 완전히 들어냈습니다. 남문 옹성은 창원읍성중에 최초로 나온 것이라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본식 기와를 얹어 놓은 창원 북동샘 담장

예전부터 전해저오는 이야기로는 웅천에서는 (물)고기 자랑하지 말고, 창원에서는 물 자랑하지 말고, 칠원에서는 구들자랑하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창원읍성 북동샘을 가면 적혀있는 글이 있는데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대부분의 샘들이 없어고 현재는 창원 읍성 객사 앞 북동샘만 남았다. 북동샘은 어떤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수질도 양호해 부임하는 부사마다 감탄했...

창원읍성 서당인 육영재를 찾았다

동요 “고향의 봄”의 작사자인 이원수는 창원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면서 서당에서 한문을 수학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원수가 이야기하기를 “창원읍에서 자라며 나는 동문 밖에서 좀 떨어져 있는 소답리라는 마을의 서당엘 다녔다. 소답리는 작은 마을이었지만 읍내에서도 볼 수 없는 오래 되고 큰 기와집의 부잣집들이 있었다. 큰 고목의 정자나무와, 봄이면 뒷산의 ...

64년만의 창원읍성 변화

▼ 2018년 다음지도를 캡처한 것입니다. 창원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의창동의 모습으로 여느 도시의 모습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지도를 자세히 보시면 중앙정도를 기준으로 동측은 바둑판처럼 잘 정리된 도시계획이 보이고 서측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로 단독주택이 많은 곳인데 이곳은 얼마나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요?▼&...

사라진지 110년만에 나타난 창원읍성 사직단2

『창원부읍지』 ‘단묘’에 의하면, “창원의 사직단은 창원 도호부에서 서쪽으로 2리에 있다.”고 적혀져 있습니다. 창원도호부라고 하는 것이 동헌인지 객사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동헌과 객사의 기준으로 해도 직선거리 730m와 600m라 서측 2리안에 있습니다. 여단은 북 1리라고 했는데 일단 여단으로 추정하는 곳이 북 1리 안에는 있습니다.▼ ...

창원읍성 사직단을 찾았다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창원 사직단을 살펴보면 "『창원부읍지』 ‘단묘’에 의하면, “창원의 사직단은 창원 도호부에서 서쪽으로 2리에 있다.”고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 32권 경상도 창원 도호부 ‘사묘’에 의하면, “사직단은 창원 도호부 서쪽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사직단의 위치는 창원 도호부가 합포성에 있을 때의 사직단이다. 임진왜란 후에 창...

1954년 항공사진을 보고 분석한 창원읍성

국토지리정보원에서 구한 1954년 창원읍성 항공사진입니다. 워낙 사진이 큰 사진이라 관심이 있으신분은 국토지리정보원에 회원으로 가입하셔서 다운로드하시면 사진 파일을 구할 수 있습니다.읍성이 파괴되는 시기가 1910년 이후인데 창원도 마찬가지로 일제강점기에 본격적인 파괴가 되는데 창원도 마찬가지로 파괴가 됩니다. 다만 창원의 경우 조선시대에는 창원이 중심...

창원읍성 여단(濾壇)을 찾았다

우와~ 이거 뭐 전율이 흐르네요. 아 제가 이것을 찾았나 하는 마음이 듭니다. 잘 아시다시피 지방에 남아있는 읍성들은 일제강점기 때 대부분 파괴가 되고 남아있던 일부 체성도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대부분 파괴가 됩니다. 창원은 행정이 마산으로 옮겨가면서 어느 정도 살아남았습니다. 읍성에는 동헌과 객사를 비롯하여 사령청, 질청, 관아 등이 들어섭니다. 읍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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