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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에서 6시 출발할 동안 왜수군은 도망을 가지 않았다

제장명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장이 지난 2020년 2월 14일 발표한 <임진왜란 시기 합포해전의 쟁점 검토>에서 "그런 상태에서 출발 명령을 받고 출전한 80여 척의 함선이 모두 출동을 완료하려면 필자 생각으로는 적게는 1시간, 많게는 2시간 정도 소요 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더욱이 신시가 15시부터 17시까지로 볼때 정확히 4시경이...

임진왜란 해전사에 나오는 합포해전의 오류에 관하여

최두환씨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완역난중일기>에서 합포해전을 웅천땅 합포(경남 진해시 웅천 2동 학개/합개)라고 규정을 하였습니다. 최초로 합포가 웅천의 학개라고 하였지만 조선시대에 그곳에 진짜로 사람이 살았는지 아닌지, 문헌상에 합포라는 지명이 등장하는지, 포구로서 문헌에 남아있는지 등을 이야기하지 않고 그냥 웅천땅 합포...

합개가 합포해전지라고 최초 주장(?)

지난 6월 16일 합포해전 428주년을 맞아 합포해전지가 진해 학개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의 이야기가 맞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직접 거제 장목 구영에서 창원 진해 학개까지 배를 타고 이동을 하였으며 함께한 분들이 진해 학개는 아닌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렇게되자 거제 장목 구영에서 신시에 출동을 하였다는 부분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을 하고 ...

합포해전 428주년 합포해전 추적답사

13시 18분 귀산 출항16시 정각 구영 출항 구영에서 학개까지 직선거리 대략 7.6km16시 55분 학개 도착17시 25분 학개 출항 학개에서 난포까지 직선거리 대략 8.7km18시 35분 난포 도착18시 37분 난포 출항 난포에서 귀산까지 직선거리 대략 13.5km20시 06분 귀산 도착작년 8월 18일 귀산에서 구영으로, 구영에서 학개로, 학개에서...

합포의 흔적은 이렇게 많이 남겨져 있는데 진해 합포의 흔적은...

북마산을 가면 마산여중 뒤편에 있는 산을 봉수대가 있어서 봉화산이라고 부르며 봉화산봉수라고도 이야기한다. 봉화산봉수를 달리 이야기할 때 성황당봉수라고도 부른다. 그럼 성황당은 왜? 봉화산에 있을까? 보통 고을의 읍치가 있는 곳에 있는데 성황당이 왜? 먼 곳에 있을까? 이는 합포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봐야 한다. 합포현치소가 있었던 현 자산동 문신...

합포해전이 아닌 학개해전이라...

지난 2000년 6월 발행한 <진해의 땅 이름이야기>에는 합포해전이 아닌 학개해전이라고 하며 지도에는 합포라는 오기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지난 2006년 발행한 이순신연구논총 7호에 들어있는 <이충무공과 진해>에는 "한자로는 학포(鶴浦)로 쓰며, 소리내면 '합포'가 되므로 '合浦'로 써서 마산의 옛 이름과 혼동을 잘하고 있다"라고 ...

합포해전 428주년 합포해전 추적탐사를 시작합니다

합포해전 428주년을 맞아 합포해전 추적탐사를 시작합니다. 현재 창원시 진해구 학개가 합포해전이 벌어진 곳이라고 이순신을 연구하시는 분들중 일부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학개가 아니라고 주장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확하게 결론은 안되었지만 창원시 진해구 학개에는 합포해전지라는 표지석과 답사길 등이 있습니다. 또한 자료에도 그렇게 적어 놓아 이제...

합포해전이라고 하는 학개의 포구는 조선시대 어디에 있나요?

1656년(효종 7) 유형원(柳馨遠)이 편찬한 전국 지리지에 웅천에 관한 포구가 나옵니다. 웅천의 포구는 6개인데 부곡포, 웅포, 덕산포, 양곡포, 제포, 주포입니다. 웅천 읍치에서 가장 먼 곳은 바로 양곡포로 서측 55리라 표시하였습니다. 양곡포는 현재 창원시 성산구 양곡동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서측이 아닌 동측으로 가장 먼 곳은 주포인데 동측으로 ...

완포는 합포의 관할지였다

고려시대 합포의 관할지 중 하나가 완포향(莞浦鄕)입니다. 완포는 현재 창원시 진해구 진해 해군기지사령부가 있는 곳입니다. 현재도 해군이 있는 것처럼 당시에도 포구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향(鄕)은 신라 때부터 조선 초기까지 있었던 특별 행정 구역으로 주민이 집단적으로 거주하였던 마을을 이야기합니다. 고향(故鄕)의 향과 같은 단어입니다. 고려 때 합포현이 ...

마산지역 학교에 등장하는 합포

이순신이 치룬 해전을 진해 학개라고 규정하고 있는 이순신전문가들 하지만 나온 것은 아무것도 없고 자신들이 주장을 돌려막기하고 있다. 무엇이 나왔는가? 임진장초의 시간까지 변경하는 무리를 두고 있다. 그에 비해 합포만은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 경덕왕 16년(757년)에 처음으로 합포라는 지명을 사용하고 나서 1282년까지 무려 525년을 사용해왔으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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