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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가 멋있는 순창향교

순창향교는 순창읍을 가로 지르는 경천 남측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순창향교도 산자락에 걸쳐진 것이 아니라 평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순창향교는 남북으로 건물배치가 된 것이 아니라, 동서로 건물배치가 되어져 있더군요. 이 부분은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순창향교 건물의 배치를 보면 앞쪽은 명륜당, 뒤는 대성전이 배치되어져 있는데 일반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평지에 있는 운봉향교

언덕 위의 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다리가 굵어진다는 이야기를 우스게 소리도 하죠. 향교의 경우 보통 산꼭대기는 아니어도 뒤에 산이 있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본 운봉향교는 산이 아예 없더군요. 또 평지에 향교가 있는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제가 찾아갔던 날에는 운봉향교가 문이 닫혀져 있어서 들어가보지는 못해 보았습니다. 운봉향교는...

함양안의향교 하마비에 구멍의 용도는?

함양 안의향교 입구에 있는 하마비. 하마비는 전국 향교에가면 서 있는 비석입니다. 이 하마비를 자세히 보면 성혈과 흡사한 원형 구멍이 여러개가 있습니다. 이런 구멍이 뚤려있는 비석들은 전국에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경남에서도 많이 보았고요. 이런 구멍은 성혈과는 무관하며 기자(祈子)신앙과 관계가 있을 것 같습니다. 비석에 있는 돌을 갈아 마시면 아이를 ...

함안과 봉화는 봉황으로 연결되어져 있다

현재 함안군의 중심은 가야읍입니다. 가야읍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성장하였으며 그 성장의 중심에는 기차가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가야읍이 아닌 함안면이 함안의 중심이었습니다. 현재 함안읍성이 일부 남겨져 있지만 산쪽으로 가야 볼 수 있으니 대부분은 잘 모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함안면에 함안초등학교가 있는 것을 보고는 어 여기에 왜? 지역...

함안 칠원향교 이전 시기는 언제일까요?

함안군 칠원읍을 가려고 마산에서 들어가면 칠원읍 구성사거리 오른쪽 옆에 교동이라는 안내판이 나옵니다. 교동은 말그대로 향교가 있었던 곳인데 칠원향교는 보이지 않고 칠원읍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칠원향교가 보입니다. 칠원동헌과 객사 기준으로 보면 칠원향교는 서측에 있습니다. 향교는 보통 동측에 있는데 칠원향교는 서측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왜? 동측에 있다가...

화려한 단청을 가지고 있는 거창향교

거창향교의 홍살문은 거창향교에서 직선거리로 150m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홍살문 아래에는 하마비가 있는 것은 여느 향교와 다르지 않습니다. 거창향교의 경우 전학후묘(前學後廟)로 되어져 있으며 필자가 방문했을때에는 문이 닫혀져 있어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거창향교의 경우 다른 향교와 달리 외삼문과 2층 누각이 일직선상으로 자...

조선시대 지방교육기관인 김해향교를 찾아서

김해향교에 관하여 문화재청의 글을 보면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김해향교의 세워진 시기는 알 수 없으나『김해읍지』에 의하면 옛 김해부 동쪽 다전동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후 향교가 있던 산이 무너져 숙종 14년(1688)에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전체적인 배치는 공부하는 곳인 ...

마산향교(진해향교)

마산향교는 현재 마산시 진동면 교동리에 있습니다. 저번에도 이야기 하였던 것 처럼 향교가 있는 동네는 교동리,교동,명륜동이라는 지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향교의 교자를 사용해서 지명을 지었고 이런 방식이 전국적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향교의 경우 보통 읍치 즉 관아가 있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설치를 하였는데 읍성의 바...

거제향교

경남 거제시 거제읍 서정리 626번지에 있는 거제향교는 경남유형문화재 제206호로 1982년 8월 2일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20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거제향교로 들어가기전에 만난 하마비로 거제향교 입구 100미터전에 있었습니다. 하마비는 최근에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1432년(세종 14)에 서문골에 건립되었다. 1664년(현종 5) 거제 동헌(경남유...

동래향교

동래향교는 1392년(태조원년)에 국가의 교육진흥책에 따라 지방에 향교를 설립 함에 따라 설립되었다고 추정된다. 그 후 임진왜란때 동래성 함락과 함께 불타 버리고, 왜란이 끝난 후인 1605년 (선조38)에 동래부사 홍준이 재건하였다. 원래 읍성 동문밖2리 가량 떨어진 곳에 있었으나, (보통 향교는 읍성 밖에 설치를 하였습니다.) 1704(숙종30)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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