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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변읍성1 (철옹성) 고지도를 통해본 영변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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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헤드라인에 나오는 철옹성에 관련된 내용이다. 철옹성을 국어사전에 찾아보면 " 쇠로 만든 독처럼 견고한 성이란 뜻으로 어떤 강한 힘으로도 부술 수 없는 튼튼한 상태를 말함." 이라고 나온다. 2차대전 프랑스의 마지노선과 같이 어떠한 적도 방어 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철옹성이 가짜가 아닌 진짜가 있다. 바로 영변읍성이다. 북한의 읍성 시리즈 2번째인 영변읍성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가 알고 있는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에 등장하는 영변의 약산... 그리고 원자로때문에 본의 아니게 주목받고 있는 영변... 그곳에 조선시대 가장 큰 읍성이 있었는데 바로 영변대도호부 읍성인 영변읍성이 있다. 영변은 현재 평안북도에 속하고 있지만 평안남도와 경계지점에 있는 군이다.

이번에 소개할 영변읍성에 직접가보지를 못해서 인터넷에서 모은 자료를 가지고 설명을 하며 2편에 걸쳐서 진행할 예정이다. 첫번째는 고지도를 중심으로 본 영변읍성에 관련된 이야기이다.

▼ 광여도에서 본 영변읍성의 모습이다. 산세가 상당히 높아 보이며 읍성은 산의 지형을 따라 조성되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철옹산의 동쪽은 약산,동대의 큰 낭떠러지이며 남쪽은 넓은 들판이 펼쳐진 천혜의 요새지이다. 평북 영변군 영변읍에 있는 고구려 산성으로 영변산성이라고도 한다.
▼ 광여도를 확대해본 모습으로 영변읍성안에 상당히 많은 관아들이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약산의 경우 상당히 높고 산세가 가파름을 알 수 있으며 영변읍성이 하나의 성으로 되어진 것이 아니고 여러개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영변읍성의 경우 조선시대 읍성 중 가장 크다고 이야기 하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보통의 읍성과 달리 읍성안에 향교와 서원이 자리잡고 있다. 보통 읍성의 경우 성밖에 읍성과 서원이 자리잡고 있는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남문,북수문, 동문의 경우 홍예식으로 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 해동지도에서 본 영변읍성이다. 영변읍성 주위로 두개의 강이 흘러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약산을 기점으로 상당히 높은 성임을 알 수 있고. 약산성의 경우 퇴뫼식으로 된 성으로 보이고 본성의 경우 포곡식 성임을 알 수 있다. 영변읍성의 경우 고구려 때 처음 쌓고 그 후 계속 보강한 성으로 본성,약산성,신성,북성 등 4개의 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약상성과 본성은 고구려 때 쌓은 것이고 신성은 조선시대인 1683년 본성 안의 서남부에, 북성은 1684년 본성 안의 서북부에 쌓은 것이다.

▼ 성벽의 둘레는 대략 본성이 14㎞, 약산성이 1㎞, 신성이 3㎞, 북성이 2㎞이다. 성벽의 높이는 6∼7m이다.
약산성은 사방이 깎아지른 듯한 절벽으로 된 약산 위에 쌓은 것으로 평평하게 생긴 대지를 에워싼 성이다. 본성은 약산성 동쪽 성벽 밖에 잇대어 영변을 둘러싸면서 남쪽에 남산, 동쪽에 모란봉, 북쪽에 진망산 등 여러 봉우리들과 능선을 따라 쌓은 성이다. 남문과 동문은 홍예식이고 북수문의 경우 평거식으로 되어있다.
▼ 여지도에서 본 영변읍성으로 나중에 나올 지승지도와 비슷하여 지승지도때 이야기 한다.
지승지도에서 본 영변읍성의 모습입니다. 영변읍성의 성벽을 쌓는 방법은 지형조건에 따라 달랐는데 약산성의 동,서,북 3면은 절벽을 그대로 성벽으로 삼았고 남쪽 일부 구간에만 성벽을 쌓았다. 본성은 산봉우리와 능선 부분 바깥면에는 외면쌓기 방법으로, 골짜기를 이어주는 부분과 성문 좌우 부분에는 양면쌓기 방법으로 성벽을 쌓았다. 또 본성과 약산성의 성벽은 사각추 형태로 다듬은 성돌을 벽돌 쌓듯 쌓아올렸다.


▼ 영변읍성은 역사적으로 외세의 침략을 여러 차례 받았는데 11세기 초 거란의 공격을 수차례 물리쳤으며 1236년 몽고와 고려 말 홍건적,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군을 모두 막아냈어 철옹성이란 이름을 이어가게 됩니다.

▼ 성문을 보면 동서북문의 경우 평거식임을 알 수 있고 뷱문 옆에 수구문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영변읍성의 경우 산성으로 된 읍성임을 알 수 있다.
▼ 1872년 지방지에서 본 영변읍성지도이다. 위 고지도와 달리 영변도호부에 관하여 그리다보니 영변읍성에 관련되어 작게 되어 있다.
▼ 1872년 지방지에 나온 서생진지도이다. 영변읍성중 2개의 성만 표시되어있는데 약산성과 신성의 모습이다. 그림지도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측에 본성이 자리잡고 있다. 본성에 각종 관아들이 있는 곳이며 주민들이 생활하는 곳이다.  
▼ 약산성의 모습옆에 신성이 있다보니 두개의 성만 보이지만 여기서는 본성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 서장대의 모습이 보이고 자세하게 그려져 있어 각종 관아들의 모습이 잘 보인다.
▼ 수로를 따라 수구의 모습도 보인다. 성곽의 모습이 자세히 나온다.
▼ 영변읍성의 성곽모습으로 북성과 본성,약산성,신성 이렇게 4개의 성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북수구문의 경우 계곡으로 흘러가고 있고 지형도를 보면 남문이 가장 접근하기 쉬운 곳임을 알 수 있다.
▼ 철옹성전도의 모습으로 영변읍성에 관련되어서 자세하게 나와 있는 그림이다.
▼ 현재의 영변의 모습이다. 영변읍성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측에 영변읍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덧글

  • 아야소피아 2009/08/24 12:35

    그나저나 지도 참 잘 그렸네요.. 인공위성도 없던 시절인데...
  • 발품의 댓가이지 않나 싶네요. 저 지도를 그릴려면 적어도 같은 장소에 몇번을 가야 되지 않을까 싶네요. 팬저 2009/08/24 14:34

  • 유진우 2009/08/25 07:34 삭제 |

    중요한 것은 현지 실측인데 아쉽죠
    지금은 얼마나 흔적이 남아있을지...
    조선시대 읍성을 저런 식으로 축성하고 군사 및 화포와 화약을 충분히 비치했다면 조일전쟁 초반에 그토록 허무하게 함락되지 않았을텐데 좀 아쉽죠
    최근에 조사한 자료들을 대조해보면 당시 일본에서는 돌담성(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거성 "하마마쓰성"의 별칭. 그만큼 돌로 쌓은 성이 극히 드물었다고 하네요 )의 비중이 크지 않았다고 하네요
    대부분 산을 깎아 그 위에 목책과 흙담만 두른 성이었다는 얘기죠 -_-;;
  • 약산성과 본성을 제외하고 신성과 북성의 경우 임진왜란이 끝난 후 근 90년 후 축성을 한 것입니다. 인터넷으로 구한 자료에 의하면 남측 성곽이 남아있더군요,. 팬저 2009/08/25 11:19

  • 역사관심 2010/07/30 01:57 삭제 |

    이 읍성은 나중에 통일되고 꼭 복원해야 할 성인듯...홍보도 철옹성으로 하고.
    일본성들만큼 유명해질 가능성이 보이네요...
  • 아무래도 상징성이 있겠죠. 영변과 핵, 영변과 진달래, 영변과 철옹성으로 연결되니 그럴 것 같습니다. 팬저 2010/07/30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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